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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이런저런 일도 많고 생각도 많이 듭니다. 삶에서, 개발하면서, 직장생활하면서 또는 놀면서.. 지나치는 일들과 스쳐가는 생각들이이 깡그리 기억에서 지워지면 정말이지 아무것도 남지 않더군요. 기억에 남을 만한, 때론 잡다한 개인적인 로그를 기록합니다

(주)웹젠 창업 스토리 및 주요 변동 상황

작성자 : 박종명
최초 작성일 : 2008-06-20 (금요일)
최종 수정일 : 2008-06-20 (금요일)
조회 수 : 2925

2003년도에 작성되었던 (주)웹젠 김남주 대표이사와 창업 스토리...

한때 몸 담았던 회사가 잘 나가기를 정말 바라고 있다.
그런데 요즘 들리는 소식은 그리 좋은 소식만은 아니니.. 참.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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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일(객원 칼럼니스트, GCM 대표이사) goldpar@gcm.co.kr
2003년 04월 21일  

 "나스닥은 새로운 출발점이죠"…'올해의 인물' 선정된 김남주 웹젠 사장 
 
안녕하세요, 김광일의 릴레이인터뷰 코너입니다. 온라인교육사이트 메가스터디 손주은 사장의 창업이야기는 잘 보셨는지요. 전국 방방곡곡의 입시생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온라인 메가스터디는 바닥을 헤매고 있는 벤처산업계에 분명 희망의 불씨를 던져준 유망기업이었습니다.

손 사장이 바통을 넘긴 사람은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웹젠의 김남주 사장입니다. 손 사장은 “30대 초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창업 3년만에 그 치열한 온라인게임시장에서 선두그룹으로 뛰어오른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손 사장은 웹젠의 사업이 워낙 파워플해 주위의 아는 사람을 제쳐두고, 김남주 사장을 다음 릴레이인터뷰 대상자로 강력하게 추천했다고 소개했습니다.

웹젠 김남주 사장이 어떤 면에서 그렇게 파워플한 지, 그의 창업스토리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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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초반의 고졸 출신 게임엔지니어가 창업 3년만에 시가총액 900억원대의 게임 벤처기업을 일궈내는 데 성공, 벤처산업계는 물론 증권가에 화제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대박 신화의 주인공은 3D온라인 롤플레임게임 ‘뮤’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웹젠의 김남주(33) 사장. 성공 예감은 웹젠의 폭발적인 매출 신장세를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수 있다.

창업 3년차인 웹젠의 올해 예상매출액은 450억원, 예상순익은 무려 250억원규모. 웹젠은 6월께 코스닥에 정식 등록예정이다. 주당 2만5천원(액면가 500원) 기준해 총 900억원대의 시가총액은 무난히 넘어설 것이란게 증권가의 대체적인 평가다.

서울 강남 도곡동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김 사장은 오랜 기간 밤낮없이 개발에만 묻혀 살아온 탓인지, 한 눈에도 꽤나 고생했을 것 같은 느낌이다. 30대 초반이지만, 훨씬 나이가 들어보인다.

사업 얘기를 늘어놓는 모습은 한 10년쯤 사업한 사람마냥 진중하고 무게가 있다. 오랜 고난끝에 얻은 성취감이지만, 결코 도취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잡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다소 놀라운 것은 고교 졸업후 지금까지 게임개발에 매달려온게 전부이지만, 기술에 집착하는 엔지니어 특유의 기술이상주의나 고집스러움을 찾기 어려울만큼 개방적이라는 점.

그리고 벌써 시장과 마케팅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웹젠의 나갈 방향을 설명하는 모습은 CEO로서의 풍부한 잠재력과 빠른 발전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웹젠은 2000년 5월 창업한 신생 게임업체. 2001년 국내 최초로 선보인 3D 온라인 롤플레잉게임인 ‘뮤’의 폭발적인 인기에 힙입어 지난해 288억원의 매출에 152억원의 순익을 올린 데 이어 올 6월에 등록예정인 코스닥 예비주자.

◆ 미술학도의 꿈, CAD의 충격

“어머니, 전 돈을 벌어야겠어요. 대학은 필요없으니 걱정마세요”

92년초, 서울예림미술고를 졸업한 김남주는 좋아하는 미술을 밑천삼아 돈버는 게 자신있다며 부모님을 설득하고 있었다.

김남주는 어린 시절부터 미술이 그렇게 좋았단다. 초중고 매학년마다 미술상은 도맡아 놓고 받았다. 그림에 빠진 이유는 만화영화의 영향이 컸다. 그의 어린시절 꿈은 만화영화감독.

“초등학교때 본 ‘로보트태권V’, ‘황금날개1,2,3’ 은 정말 잊지 못할 정도로 마음속깊이 파고들었던 같아요”

그는 미술시간이 가장 즐거웠고, 다른 과목은 안중에도 없었다.

성적은 늘 꼴찌 근처였고, 부모님의 꾸지람과 실망감은 극에 달했다. 부모님은 물론 학교에서조차 김남주를 공부와는 완전 담쌓은 ‘이방인 학생화가’ 쯤으로 취급했다.

고교졸업후 김남주는 대학은 꿈도 꾸지 않았다. 학교성적은 바닥인데다, 가정형편 또한 그리 넉넉지 않았던 것. 그가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곳은 자그마한 인테리어회사.

92년 당시만해도 흔치않던 인테리어가 뭔가 미술과 관련이 있을 것같아 입사했다. 그가 한 일은 설계. 평범한 직장인이던 김남주의 운명은 우연히 ‘CAD’를 접하면서 급물살을 타게된다.

이 일은 훗날 김남주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중요한 분수령이 된다. 친한 직장동료가 CAD를 이용해 컴퓨터로 도면을 그리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던 것.

넋을 놓고 바라보던 김남주는 그날 곧바로 학원에 등록했다. 컴퓨터를 전혀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CAD를 배우겠노라고 학원에 등록을 한 것.퇴근후 곧장 학원으로 달려갔다.

유난히 공부를 싫었했던 김남주는 그렇게 3개월 가까이 컴퓨터와 씨름했다. 여기서 김남주는 정말 우연히 그래픽분야에 입문하게 된다. 후배가 던진 한마디 때문이었다.

“형, 그래픽공부를 더 해보세요. 형은 그림 좋아하잖아요”

그림 좋아하잖냐는 말에 김남주는 귀가 번쩍 뜨였다.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평소 행동이 느리던 김남주였지만, 그래픽 공부를 하기위한 그의 행보는 전광석화처럼 빨랐다.

그로 그럴 것이 지금까지 배운 CAD가 그림을 기반으로 한 애니메이션을 쉽게 그릴수 있는 툴이 아님을 알고 크게 실망하고 있던 터였다.


김남주, 그는 누구인가
71년 서울생.서울예림미술고교졸. 게임사관학교로 불리는 미리내소프트에서 그래픽개발을 총괄했던 게임엔지니어출신. 10년가까운 개발경력탓에 3D그래픽분야에 관한한 국내 다섯 손가락안에 들정도의 고수로 평가받고 있는 인물.겸손하고 민주적이라는 게 주위의 평.
 
취 미 게임과 영화보기(특히 SF영화를 좋아한다)
술 소주 한병(담배는 하루 한갑)
운 동 특별히 없다.
존경하는 CEO 킴벌리 클라크의 다윈 스미스(겸손한 리더로서 전형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10년후 모습 세계적인 게임회사로 발돋음한 웹젠의 CEO 혹은 개발자로서 주어진 역할을 다하고 있을 것이다. 
  


◆ 그래픽 전문가, 새로운 고수의 등극

결심을 하고 난 김남주는 곧바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93년, CAD전문공인학원인 ‘캐드하우스’에 등록했다. 그리곤 동대문 근처 책방을 뒤져 그래픽관련 서적을 닥치는대로 구입, 독학으로 그래픽공부에 매달렸다.

그렇게 4개월간 미친듯이 그래픽을 파고들었다. 그러던 와중에 수강생 김남주는 학원의 직원으로 스카우트된다. 유심히 관찰하던 학원장은 김남주를 채용, 그래픽툴 기술지원 업무를 맡긴 것.

그가 훗날 그래픽전문가로 발돋음할수 있었던 것은 이 때의 경험이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당시 그가 몸담고 있던 학원은 CAD와 그래픽을 처리하는 오토데스크의 ‘3D맥스’란 유명한 제품의 국내 공인딜러였다.

김남주는 최고급 그래픽툴을 완벽하게 체험할수 있는 중요한 기회를 잡는다. 말 그대로 오토데스크 그래픽툴을 완전히 설렵,국내 그래픽 애니메이션분야 초창기 ‘마스터’로서 명함을 내밀게 된다.

실제 김남주는 풀3D분야에 관한한 국내에서 최고수급으로 대우받고 있다. 이는 93년 당시 독학으로 모든 것을 체득했던 혹독한 자기계발이 있었기 때문.

김남주의 사업적 감각은 이때부터 조금씩 발휘되기 시작한다. 당시만해도 대기업에서 연필로 그린 설계도면을 받아 CAD로 전환시켜주는 단순한 일을 해주고도 몇백만원의 용역비를 받는 걸 보고, 김남주는 “그래픽이 돈이 되겠구나”는 생각을 하게된다.

그는 당시 일본 게임산업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미국 헐리우드 영화산업보다 더 큰 부가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는 일본 게임산업을 접하면서 향후 20년간 게임산업이 엄청난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것이란 확신이 들더라구요”

1년이 채 못돼 다니던 직장인 학원을 그만뒀다. 그래픽 제작을 제대로 배워보자는 심산에서였다. 자신이 그동안 연마해온 기술을 확인하고 싶었다.
하이텔 게임제작동호회에 가입, 활동했다. 동호회 참가자들은 열정적인 아마추어 게임개발자였다.

몇개월간 개발에 몰두한 끝에 슈팅게임(실탄을 발사하는 게임) 스크린샷 몇장을 PC통신에 올렸다.그 때만 해도 아마추어 동호회 회원들은 개발을 끝내면 PC통신에 무료로 올리는게 관례였다.

인터넷에 올린 몇 개의 스크린샷과 게임요약서를 올렸던 김남주는 이 일을 계기로 게임개발자로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하게되는 중요한 계기를 맞게된다.

◆ 운명의 만남,그리고 인고의 세월

“미리내소프트입니다. 저희 회사를 방문해주실수 있겠습니까”

열성적으로 동호회 활동을 하던 김남주는 금새 눈에 띄었다. 눈독을 들이던 미리내소프트는 93년말, 김남주를 스카우트했다.

미리내소프트는 ‘그날이 오면’이란 PC게임으로 유명한 게임회사로,게임개발자들에겐 선망의 대상이었다. 94년초 미리내소프트에 입사, ‘IZMIR’란 슈팅게임 개발에 참여했다.

기획과 그래픽을 총괄했다. 평면보다는 조금 입체감이 있는 랜더링기술을 처음으로 적용하던 때였다. 김남주는 그래픽부문만을 개발, 대략 프로젝트당 1200만원에 판매하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정말 놀랐죠.게임그래픽 사업의 잠재력이 이 정도로 엄청난지를 그때 처음 느꼈죠. 그 때부터 전의(戰意)를 불태웠죠. 무조건 그래픽 쪽으로 승부를 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김남주는 미리내소프트에서 근무하며 조기용씨(현 웹젠 개발담당 상무)를 운명적으로 만난다. 하이텔 동호회에서 만난후, 같은 회사에서 일을 하며 절친한 선후배사이로 발전한다.

그리고 훗날 웹젠 설립의 핵심 3인방이 된 송길섭 이사 역시 이 때 만난다. “세 명의 기술수준이 모두 높고, 특히 개발 스타일도 속전속결형으로 비슷했습니다. 마인드나 일하는 스타일이 너무 비슷했죠. 정말 같이 일하기 편했죠”

하지만 김남주는 입사한지 반년도 채안된 94년 6월, 군에 입대하면서 인생의 전환기를 맞는다. 새로운 도전과 엄청난 굴곡이 그의 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96년 6월, 제대를 한 김남주는 눈앞이 캄캄했다. 새롭게 나온 그래픽툴이 엄청나게 많아 처음부터 공부를 해야할만큼 공백이 컸기 때문.

“컴퓨터 그래픽분야는 발전속도가 엄청나게 빠르거든요. 제대하고 보니, 전부 새로운 거지 뭡니까”

“남주야, 이제 제발 정신좀 차려라. 너가 무슨 도박꾼이냐 허구한날 무슨 빠찡고 게임이냐? 이제 빠찡고게임 그만하고 새 삶을 살거라”

제대한 아들이 외출도 않고, 몇개월째 집에 틀혀박혀 게임개발에 몰두하자, 부모님의 성화가 극에 달했다. 그로 그럴 것이 당시 김 사장은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보기 힘들만큼 폐쇄된 생활스타일에 젖어 있었다.

가정형편은 어려웠고,그렇다고 부모님께 손을 벌릴수도 없는 지경. 설상가상으로 97년 IMF까지 터졌다. 하지만 김남주는 취직을 포기했다. 당장의 취업보다는 실력을 제대로 쌓는게 중요하다는 나름의 판단때문이었다.

“그 때는 IMF로 게임회사들이 줄줄이 쓰러졌죠. 게임회사에 입사하는 것은 비전이 없었거든요”

2년간 그렇게 그는 독수공방 생활을 했다. 부모님의 성화와 “게임에 미쳐 이상하게 됐다”며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친척들의 눈길이 곤욕스럽기만 했다.

가끔씩 찾아오는 친구와 집에서 막거리를 마시는게 유일한 낙이었다. 6개월간 외출을 한번도 하지 않을만큼 그렇게 죽음과 같은 2년간의 세월이 흘렀다.

◆ 새로운 돌파구, 홀로서기

“기용아, 3차원 슈팅게임을 한번 만들어보자. 3D는 우리가 잘 만들수 있을 거같아”

98년 가을, 서울 종로서적 옆 커피숍.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를 바라보며, 둘은 그렇게 개발할 게임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다. 김남주와 조기용은 작업속도가 빠른 3차원 슈팅게임을 만들기로 합의했다.

이 때의 만남이 사실상 웹젠의 탄생을 알리는 시발점이었다. 그들은 99년 여름, 이미 4가지 게임개발을 마무리지을 만큼 열정적으로 개발에 몰입했다. 2D게임과는 비교할수 없는 부드러운 애니메이션효과와 섬세함은 개발자인 김남주조차도 감탄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의욕은 보기좋게 실패로 끝났다. 당시 국내 온라인게임은 모두 2D인 상황이었고, 아무리 화려하고 입체적이고 현실감이 뛰어난다고 해도 2D에 익숙한 유저들에게 3D는 아직도 생소한 그래픽일 뿐이었다.

기술이 너무 앞서갔던 것. 당시 PC 하드웨어 환경이 대부분 2D지원이 고작인 상황에서 3D 게임만을 줄기차게 개발하고 있었으니, 수요가 있을리 없었다.

“당시만 해도 PC 사용자 100명중 2, 3명 정도만이 3D환경을 갖추고 있을 정도였습니다. 기술만 너무 앞선 상태였죠”

이때부터 김남주의 사업적 감각이 서서히 발휘되기 시작한다. 시장에 팔릴수 있는 제품을 개발하자는 생각을 하게된 것. “마냥 만들 수만은 없었습니다. 결국 시장과 결부시켜야 했습니다”

보통의 엔지니어처럼 김남주 역시 이상적인 개념의 기술과 제품을 개발하는데 근 2년여를 허비했다. 그리곤 자신들의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닌,시장이 좋아하는 스타일의 게임을 개발해야만 한다는 결론을 스스로 내린 것.나이어린 엔지니어로서 대단한 발상의 전환이었다.

99년말 송길섭씨가 합류했다. 셋은 3차원소재를 게임에 접목하는 3D게임을 개발키로 의견을 모았다. 개발의 핵심은 손쉽게 조작할수 있어야 한다는 것. “3차원소재를 게임에 접목시키는 것은 아주 힘듭니다.재미난 놀이로 바뀌기 위해서는 너무나 많은 제약들이 따르죠”

하지만, 이미 2년여간 4가지 게임을 개발했던 이들은 이미 머리속에 그 해결방안들을 하나둘씩 가다듬고 있었다.셋은 회사를 설립, 제대로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2000년 5월, 예술의 전당앞에 10여평 남짓한 사무실을 얻었다. 직원은 4명. 이에 앞선 2000년초, 김남주는 몇차례 바람을 맞혔던 이수영씨(전 웹젠 사장)를 만나 사정을 하기 시작했다. “제발 대표이사를 맡아주십시오. 개발은 정말 자신있습니다”

김 사장이 이수영씨를 영입한 것은 최적의 CEO적임자라 판단했기 때문. 이수영씨는 게임회사 미리내소프트에서 3년간 근무후,당시 외국계투자회사에서 투자심사역으로 일하고 있었다.

웹젠은 결국 4명이서 각각 25%씩의 지분으로 총 2억원을 투자, 탄생했다. 토, 일요일 빼고는 회사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2D게임 ‘리니지’가 엄청난 수익을 내며 성공하자,그들은 고무되기 시작했다.

그래픽은 김남주사장이, 클라이언트 프로그램은 조 상무가, 그리고 네트워크 프로그램은 송 이사가 각각 개발을 전담, 개발에 나섰다.

◆ 화려한 탄생, 뮤(MU)의 무한질주

“근데, 온라인게임에서는 왜 화려한 그래픽과 액션이 강한 동작을 구현할수 없지? 왜 다들 온라인게임에서는 실감나는 액션이나 현실감있는 배경을 구현하는게 불가능하다고 하지?”

소주잔을 기울이던 셋의 머리속에는 이미 3D 슈팅게임을 개발하며, 경험했던 부드러운 애니메이션과 입체감, 탁월한 현실감의 3D게임 생각들로 꽉 채워져 있었다.

“3D로 게임을 만든다면 그야말로 기존의 게임에서는 도저히 느낄수 없는 최고의 스릴을 맛볼수 있을 거라 확신했습니다”

사실 3인방이 게임장르로 SF판타지를 택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들 스스로 ‘스타워즈 마니아’로 지칭할 만큼 SF에 심취해있었기 때문이다. 화려한 그래픽 등 자신들의 강점을 최대한 살릴수 있는 분야로 SF판타지를 꼽은 것. 각종 자료를 뒤진끝에 게임타이틀 이름은 신비한 전설의 대륙, ‘뮤(MU)’로 정했다.

“약 10 만가지의 아이템 조합이 가능하도록 했고,아바타 외형이 바뀌도록 했습니다.무엇보다 캐릭터,배경 및 몬스터등을 크게 구사했죠. 물론 시점도 고정시켰습니다. 어지러움을 방지하고,게임의 흥미를 최대한 살릴수 있는 액션을 최대한 강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3D에 아바타 옷도 갈아 입히고, 무기도 바꿀수 있는 기능 등을 개발하기 위해 수없이 밤을 지샜다. 국내 최초로 3차원의 화려한 그래픽에 참가자들이 역할을 정해 게임을 하는 이른바 ‘풀 3D 롤플레잉게임, 뮤’는 이렇게 탄생했다.

개발착수 10개월이 지난 2001년 5월,베타서비스를 시작했다. 동시접속자수가 3만명에 이를만큼 사용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해 8월 김남주는 성공예감을 확신했다.

그리고 그해 11월, 유료로 상용서비스를 개시했다. 초조함의 연속이었다. 유료화이후 관건인 3개월간 경이적인 일이 일어났다. 유료전환 이후 고객 대부분이 그대로 유료로 전환한 것.

뮤는 단기간내 누적이용자 300만명을 기록하며 게임산업계의 핵폭풍으로 떠올랐다. 상상치 못한 대박에 직원들은 흥분의 도가니에 휩싸였다. 2001년, 24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곧바로 흑자로 전환했다.

해가 바뀐 2002년. 엄청난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터졌다. 5월 들어 한달 매출액이 30억원을 넘어서는 등 뮤의 열풍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2002년 8월, 뮤 대만 현지 베타서비스개시’, ‘2002년 9월,중국에 합작법인설립’, ‘2002년 10월,중국 현지 뮤 베타서비스개시’, ‘2002년 11월 뮤 대만 현지상용서비스 개시’….

게임마니아들의 폭발적인 반응과 대만, 중국 등지에서의 성공적인 서비스개시로 웹젠은 2002년 288억원의 매출에 152억원의 순익을 내는 등 경이적인 실적을 기록했다.

뮤의 돌풍은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올 1월 중국에서 동시접속자수 15만명을 기록한데 이어 2월에는 국내 동시접속자수 5만명, 4월에는 중국 동시접속자수 25만명을 기록하는등 여전히 파죽지세다.

‘뮤’는 특히 대만,중국에서 온라인게임 한류열풍의 주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5월초 일본시장에서 오픈베타서비스를 시작할 웹젠은 올해 해외시장에서만 100억원규모의 로열티수입을 낙관하고 있다.

웹젠은 이런 기세에 힙입어 올해 450억원의 매출에 250억원의 순익을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6월께 코스닥에 정식 입성,또한번 성공신화를 일궈낼 태세다. 2002년 9월,김남주는 개발이사에서 대표이사로 역할을 바꿔 본격적인 공격경영에 나서고 있다.


웹젠, 어떤 회사인가
 
설립일 2000년 5월
종업원 140명
자본금 12억7000원
연락처 (02)3498-1610 www.webzen.co.kr
사업영역 온라인게임개발 및 서비스
경영계획 2003년 6월 코스닥 거래개시.중국 대만 일본에 이어 미국시장진출
매출목표 2003년 450억원 
 
 
◆ 김남주의 성공론, 그리고 꿈

웹젠의 경영진은 김남주 사장이 고졸출신인 점외에 핵심인력 대부분 일류대 학벌과는 거리가 멀다. CTO를 맡고있는 조기용 상무(안양과학대 전자계산학과), 송길섭 이사(의정부공고) 모두 독학으로 최고의 경지에 오른 입지전적인 엔지니어들이다.

이들 3인방은 국내 최초로 풀 3D 롤플레잉게임을 선보인데 이어, ‘뮤’를 이젠 2D 롤플레잉게임의 대표주자 리니지를 위협하는 ‘포스트리니지’의 자리에 올려놓을 만큼 게임산업계의 핵심적 인물로 떠오르고 있다.

‘뮤’의 성공비결 역시 결코 우연이 아니다. 뮤는 평면적인 그래픽이 대부분인 국내 2D 온라인게임과는 달리 비디오게임에서나 가능했던 입체적인 3D그래픽을 인터넷상에서 구현했다는 점이 성공요인의 핵심이다.

특히 3D그래픽임에도 불구하고 2D게임의 장점을 살려,이용자들이 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발한 점 역시 게이머들을 열광시킨 요소다. 특히 게이머들 사이에서 최고의 찬사를 받았던 수중월드 ‘아틀란스’의 패치,그리고 죽음의 사막, ‘타르칸’ 등 끝없이 고객의 요구사항을 수용하는 빠른 업그레이드 또한 ‘뮤’를 급속도로 확산시킨 요인이다.

김남주 사장의 성공론의 핵심키워드는 ‘자신감’이다. “소속된 멤버들의 일에 대한 자신감이 가장 중요합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업에 대한 경험과 자신감이 없으면 절대 성공할수 없습니다”

두번째는 시장에서 팔릴수 있는 ‘제품기획력’을 꼽는다. 시장변화에 빠르게 대응할수 있는 마케팅력도 빼놓을수 없는 성공론의 핵심요소라고 소개한다.

김 사장이 가장 중요시하는 성공론은 자만하지 말아야한다는 점. “사업이 조금 잘되고 난후 경솔해지고,자만해지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봤습니다.자만해지는 순간부터 기업은 흔들리게 돼있죠” 그는 그래서 초심을 잃지 않기위해 부단히 노력할 생각이란다.

김남주는 요즘 웹젠의 미래를 구상하느라 정신이 없다. “50%는 게임개발사,50%는 게임을 시장에 뿌리는 퍼블리서로서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우량한 게임회사를 많이 거느리고 사업을 하는 개념으로 나갈 것입니다”

김 사장은 요즘 무지 분주하다. ‘뮤’의 업그레이드 차기작 개발과 모바일 등 멀티플랫폼에 적용시키는 일외에 캐릭터,소설 등 부가사업을 동시다발적으로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여기에 게임유통(퍼블리싱)사업도 준비중이고, 미국 및 유럽시장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그의 포부는 다부지다. “웹젠은 전세계가 동시에 즐길수 있는 온라인게임을 개발,세계에서 인정받는 게임개발회사로 커나갈 것입니다”

웹젠의 김남주 사장. 서른 세살의 젊은 나이지만 그는 벌써 게임산업의 ‘빅5’로 불릴만큼 성공적으로 기업을 일궈내며 21세기 국내 게임산업을 이끌고 갈 뉴리더로 우뚝 서있었다.

[인터뷰를 마치며]

김남주 사장은 지금도 부모님의 다세대주택에 얹혀산다고 합니다.
집도 없고,시간도 없어 그저 회사에서 게임개발에 몰두한다고 하네요.이미 혼기를 놓친 싱글이지만,해야할 일이 많아 결혼은 생각도 못하고 있다고 하네요.스스로의 목표는 겸손한 리더가 되는 것이라고 소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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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설립이후 중요한 변동상황

일 자  주요변동상황
2000년 4월 주식회사 웹젠 설립
2001년 2월 3D RPG 온라인게임 "뮤 온라인(MU Online)" 개발완료 및 비공개 테스트(CBT)
2001년 5월 "뮤 온라인" 사전시범 공개테스트(OBT)
2001년 11월 벤처기업인증(중소기업청장) 기술평가기업(게임종합지원센터)
2001년 11월 온라인 게임 "뮤 온라인" 유료화
2002년 5월 금감원 기업 등록
2002년 7월 대만 인스리아사와 "뮤 온라인" 라이센스 계약 체결
2002년 9월 중국 The 9.com 과 중국 현지 합작 법인 '9webzen' 설립 및 "뮤 온라인" 라이센스 계약 체결
2002년 9월 대표이사 이은숙 사임 / 신임 대표이사 김남주 취임
2003년 2월 일본 게임온사와 "뮤 온라인" 라이센스 계약 체결
2003년 5월 코스닥 상장
2003년 6월 태국 뉴에라사와 "뮤 온라인" 라이센스 계약 체결
2003년 7월 모바일 게임개발사 (주)플럭스 인수, 계열회사 추가 및 게임독점판권 계약체결
2003년 12월 미국 NASDAQ 상장
2004년 5월 필리핀 모비어스사와 "뮤 온라인" 라이센스 계약 체결
2004년 5월 주식회사 델피아이 자산인수 계약 체결
2004년 7월 대만 현지법인 설립 (웹젠타이완)
2004년 7월 주식회사 알오지 자산인수 계약 체결
2004년 10월 주식회사 LK7 자산인수 계약 체결
2004년 12월 중국 상해에 R&D 센터 설립 (웹젠차이나)
2005년 1월 미국 산타모니카에 현지법인 설립 (웹젠아메리카)
2005년 2월 영국 RTW와 "APB" 전세계 판권 계약 획득
2005년 5월 베트남 FPT Communications와 "뮤 온라인" 라이센스 계약 체결
2005년 6월 영국 RTW와 "APB" 콘솔 버전 개발 및 퍼블리싱 라이센스 계약 체결
2005년 9월 "썬 온라인 (SUN Online)" 비공개테스트(CBT)
2005년 12월 미국 K2네트워크와 "뮤 온라인" 라이센스 계약 체결
2005년 12월 중국 The9에 "썬 온라인" 1,300만불 수출 계약 체결
2006년 2월 미국 Red5 Studios와 신작게임(가칭 T-Project) 퍼블리싱 계약 획득
2006년 5월 "썬 온라인" 사전시범 공개테스트(OBT)
2006년 11월 "썬 온라인" 유료화 서비스 실시
2006년 12월 "썬 온라인" 대만 공개시범서비스(OBT)
2007년 2월 중국 The9에 "헉슬리" 3,500만불 수출 계약 체결
2007년 4월 "썬 온라인" 대만 유료화 서비스 실시
2007년 4월 "썬 온라인" 중국 사전공개시범서비스(OBT)
2007년 5월 "썬 온라인" 중국 유료화 서비스 실시
2007년 9월 "헉슬리" 비공개테스트(CBT)
2007년 10월 일본 GameOn에 "썬 온라인" 6억6천만엔 수출 계약 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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